병원이야기
허름한 차림새의 할아버지 한 분이 찾아오셨다. 척 보기에도 노인들에게 흔한 중풍성 질환이 있는 듯 보였다. 상담을 시작하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지난 봄 갑자기 쓰러져 중풍 진단을 받으신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당시, 고맙게도 모병원에서 무료 치료를 받았고, 퇴원 후 다시 그 병원을 찾아가셨단다.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므로 병원을 찾아가서 처방전을 받아오긴 했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건강보험 가입도 안 된 불법체류자 신분에 한달치 약을 구입하려니 앞이 막막하더란다.

가끔 연세가 많으신 조선족 교포 환자들을 만날 때면 안타까울 때가 참 많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잘 사는 내 조국”을 선망하며, 어떡하든 한국에만 오면 무슨 뾰족수가 생기는 줄 알고 바다를 건너오신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경제불황에 청년실업율이 높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불법 체류중인 노인을 누가 고용한단 말인가? 게다가 병까지 갖고 있다면??

오늘 찾아온 이 할아버지.... 설상가상으로 양쪽 손가락을 모두 합쳐도 4개밖에 안 된다. 검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까지 댕강 짤리워진 것이다. 양손 모두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남아있는 것이 마치 게의 집게다리를 연상케 하였다. 아니, 어쩌다가??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기계수리 기술자로 일하던 중, 그만 다른 사람의 실수로 눈깜짝할 새에 손가락 여섯 개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런 몸으로 한국에 돈을 벌러오시다니?? 아무리 돈도 좋다지만, 좀 지나친 모험 아닐까?? 게다가 손가락도 제대로 없는데 무슨 일을 하실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몸으로 굳이 한국까지 오신 이유와 가족사항을 여쭈어보자 할아버지는 뜸을 들여가면서 천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꾸 쓰러지는 아들이 있어.... 사람들 말이... 그 게 간질병이라고 하대.
그 아들눔 약값이라도 좀 대줄까 해서.... 그래서 내 한국에 왔어. 글구.....
또 한 눔이 있긴 한데.....그 눔은 감옥에 갔어. 도둑질을 해서... 마누라?...
마누라는... 집을 나가버렸지.... 그러니 어떡해?
나라도 아들눔 약값이라도 좀 벌어봐야지.
그래서 한국 오긴 왔는데.... 돈 벌기 힘드네.... 겨우 리어카나 끌고다니면서
길거리에서 고물 줍는 일을 해... 잠은 아무데서나 누워 자... 근데...
지난 봄에 중풍으로 쓰러진 거야.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누가 이 병원 가르쳐주기에 내 이렇게 찾아왔지. 나좀 도와줘.”

이야기 도중 아들 얘기에 울컥! 하시더니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글썽해진 할아버지를 대하며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사람의 언어로 어떻게 저 할아버지의 아픔을 덜어드릴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조용히 티슈를 건네드릴 뿐......

양손 네 손가락으로 티슈를 받아들고 눈물을 훔치는 할아버지의 집게손! 간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향한 할아버지의 애틋한 부성애! 그리고 질곡 많은 인생길을 헤쳐나가기 위해 한국땅까지 건너오신 노년의 용기!!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뒤엉켜 찐~한 아픔으로 내게 덤벼들었다.

“할아버지.. 힘 내세요! 그래도 손가락이 이렇게 4개나 남아있잖아요. 이런 말씀
드리긴 좀 뭣하지만, 만일 손목이라도 짤리거나 아님 다리라도 짤렸으면 더 크게
불편하셨을 텐데요.... 그래도 두 다리로 한국에 건너와서 리어카라도 끌 수
있잖아요. 그리고 거 보세요. 그 손으로 눈물 콧물도 닦을 수 있잖아요.
남아있는 손가락이 고맙잖아요. 그쵸? ”

응석받이 딸처럼 다소 코멩멩이 소리를 해가며 조심조심 건넨 이 말에 할아버지는, 뜻밖에도,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응답하셨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주니 위로가 되네. 고마워... ”

하늘은 무척이나 파랗게 높게 을씬연하게 웃고 있었다
by komatoza | 2006/11/26 03:25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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